<어나더 어스> 또다른 지구에서 또다른 내가 살고 있다는 것

  

지구와 똑같이 생긴 푸른 별이 하늘에 보이기 시작한다. 술도 취했겠다 낭만적 기분에 휩싸여 넋을 놓고 하늘을 보던 수재, 로다는 단란한 가족이 타고있던 차를 들이받게 된다. 불행히도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를 제외한 가족이 모두 사망한다. 미성년자였던 로다는 상세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지만 전과자의 신분으로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되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고 묵묵히 노동이 가능한 고등학교 청소일을 맡게 된다. 어느 날 사과할 결심을 하고 자신이 낸 사고로 혼자가 된 남자를 찾아가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남자의 집을 청소해주기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불운한 사고를 내고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접어든 로다. 모래시계를 뒤집듯 다른 삶을 살게 된 그녀의 모습은 내가 당장 내일 겪게 될 일일 수도 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을 살게 되는 경우는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영화같은' 일일 뿐이지만, 내 일이 되는 즉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된다. 그리고 또 당연히 어마어마한 후회를 낳고, 만회할 수 있는 지푸라기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로다에게 실수를 돌려 놓을 지푸라기를 제공한다. 또다른 지구, 두번째 지구로 향하는 티켓이다.

두번째 지구는 로다의 넋을 놓게 만들면서 이미 한 번 로다의 삶을 바꿔놓았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는 두번째 지구의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첫번째 지구와 거울처럼 똑같다는 것이다. 단, 우리가 발견하기 전까지 같은 시간을 보내왔던 두번째 지구. 그녀가 두번째 지구를 발견한 건 사고가 나기 전이었으니 두번째 지구에서의 로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첫번째 지구에서 극복해내는 것과 두번째 지구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보는 것. 무엇을 하더라도 로다는 자신의 의지 없이 현재의 삶을 양지로 끌어올릴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래서 판타지다. 첫번째 지구와 두번째 지구에서 살던,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고 해서 나아질 거라곤 없다. 영화 <래빗홀>의 치유책으로 쓰였던 평행우주 이론처럼, 우리는 또다른 우주에 있는 또다른 지구에서 또다른 우리가 다른 버전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만 하는 편이 훨씬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 지금의 우울한 삶이 단지 여러 경우의 수 중 어떤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을 뿐, 절대적인 운명은 아닐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도 그런 또다른 내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삶에 대한 희망을 안고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여행. 이건 분명 생각만 해도 힘이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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