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식의 사각관계 표현법, 우리 선희

  

우리선희 포스터 

홍상수 감독의 신작 <우리 선희>는 홍상수의 영화치고 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지만 홍상수의 영화답게 유쾌하다.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주인공들은 여전히 2%부족한 매력을 뽐내고, 여자주인공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다. 마치 어제 이유를 모르고 싸웠던 우리의 여자친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찌질한 매력의 우리를 영화 속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에 공감하고 계속 홍상수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는다. 최근 들어 홍상수 영화 속의 남자들이 그나마 점점 덜 찌질해진다는 점은 쌍수들고 환영하는 바이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우리 선희>는 잠적했던 선희(정유미)가 학교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미국 유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부탁하려고 최교수(김상중)를 찾아온 선희는 최교수뿐만 아니라 영화 감독이 된 옛 남자친구 문수(이선균)를 만나게 된다. 문수는 선희를 아직 잊지못해 매달리고 선희는 외면한다. 다음날 추천서때문에 다시 만난 최교수 또한 선희에게 마음을 표시한다. 이 미묘한 삼각 관계에 느닷없이 재학(정재영)이 뛰어든다. 우연히 혹은 필요에 의해서 만나게 된 세 남자와 선희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선희는 완강하게 거부하지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도 않는 반면 세 남자는 적극적으로 선희에게 다가간다. 재밌는 점은 누구도 선희를 먼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선희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선택되고 불림(?)당하였다. 비록 결국엔 그들 모두 매달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선희를 팜마파탈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그들을 파멸로까지 몰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주는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응보는 약간의 민망함과 어색함이면 족하다.

또한 홍상수가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선희에 대한 세 남자의 애정은 선희에 대한 충고와 정의로 드러난다. 힘들어하는 선희에게 세 남자는 각자 자기 나름의 충고를 해주며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런 충고는 선희에게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 간의 대화에서도 언급되며, 그들의 대화 속에서 파생되는 선희에 대한 정의가 인물들 사이에서 돌고돈다. 그런데 이 충고와 선희에 대한 정의가 서로 굉장히 유사하다. 마치 같은 장면을 인물들만 바꿔서 다시 찍는 것처럼 같은 말들이 오가지만 상황이 주는 미묘한 차이가 같은 대사들에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원론적으로 이들 세 남자는 하나일지도 모른다. <우리 선희>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연애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처한 상황과 여자가 원하는 관계가 달라짐에 따라 남자의 모습도 달라진다. 하지만 원래의 그 남자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같은 말들만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세 남자는 정의를 통해서 선희를 규정짓고 소유하려하지만 선희는 그들의 능력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쓸쓸한 가을 바람처럼 선희는 잡힐듯 잡히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결국 세 남자가 하게 되는 말처럼 '선희의 마음은 도저히 알 수 없다.'

<우리 선희>가 보여주는 유쾌한 사각 관계는 홍상수의 손길에서 매력적으로 피어오르는 가을의 열매와 같이 달콤하고 씁쓸하다. 여전히 그의 영화에는 자연스러운 대사의 미학이 존재하고 지루하지 않은 긴 호흡의 쇼트가 이어진다. 미묘한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상황을 바라보는 카메라(관객)의 조용한 동행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여전히 홍상수의 영화는 상영관을 많이 얻어내지 못한다. 얼마없는 상영관과 맞추기 힘든 영화 상영 스케줄을 겨우겨우 맞추는데 5일의 연휴가 이어지는 이번 추석만큼 좋은 타이밍도 없다. 그리고 추석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생활로 복귀하는데 <우리 선희>만큼 유쾌한 영화가 아쉽게도 지금 영화관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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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홍상수식의 사각관계 표현법, 우리 선희

  1. 모하진 모하진말하길

    우리선희 보셨군요 ^^ 홍상수 감독님 작품이라 많이 기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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